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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일 금요일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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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244번 성모의 성월 영성체 성가 151번 주여 임하소서
예물준비 성가 510번 주님께 올리는 기도 154번 주여 어서 오소서
155번 우리 주 예수
파견 성가 281번 성 요셉

오늘 전례

성모 성월

교회는 해마다 오월 한 달을 성모 성월로 지낸다. 성모님의 삶을 더욱 깊이 묵상하면서 그분의 모범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 교회는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 성모님의 모범과 가르침을 묵상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성모 성월은 중세 때부터 시작되었다. 로마의 사제 필립보 네리 성인은 젊은이들에게 5월 내내 성모님께 꽃을 바치며 찬미가를 부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러한 공경은 19세기 중엽에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역대 교황들은 성모 공경을 꾸준히 권장해 왔다. 특히 1854년 비오 9세 교황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선포했는데, 이후 성모 공경 행사는 더욱 적극적으로 거행되기 시작하였다. 바오로 6세 교황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마리아 공경이 그분의 기적과 발현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 안에서 올바르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하였다.
성모 성월을 위해 교회가 공적으로 정한 예식은 없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각 본당에서는 매일 성모상 앞에서 묵주 기도를 함께 바치거나 가정에서 성모 성월의 기도를 바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또한 하루를 택해 성모상을 아름답게 꾸민 가운데 ‘말씀 전례’를 중심으로 ‘성모의 밤’ 행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성모 공경을 널리 보급시킨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1673-1716년)은 성모 공경이 그리스도에 대한 흠숭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님을 여러 번 강조하였다. 성모님과 관련된 대표적인 단체는 ‘레지오 마리애’다. 1953년 우리나라에 도입된 레지오 마리애는 수많은 교우들에게 성모님의 순명과 기도의 삶을 본받게 하면서 봉사와 선교의 길에 헌신하도록 이끌어 오고 있다.

입당송

묵시 5,12 참조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권능과 신성과 지혜와 힘과 영예를 받으소서. 알렐루야.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깨닫게 하셨으니, 저희가 사랑이신 성령의 힘을 받아 새 생명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사울은 대사제에게 청원한다. 교우들을 찾아내어 예루살렘으로 끌고 올 허락을 청한 것이다. 그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살기를 품고 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극적인 체험을 한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그는 회개했고 신앙의 옹호자로 바뀌었다(제1독서).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하는가?’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는다. 당연한 일이다.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표현은 영적 이끄심 없이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다(복음).

제1독서

<사울은 민족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1-20
그 무렵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5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9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7(116),1.2(◎ 마르 16,15)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겨레들아. ◎
○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6,56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리라.
◎ 알렐루야.

복음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2-59
그때에 유다인들이 52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자기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9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드리는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영과 진리 안에서 바치는 제사로 받아들이시어, 저희 온 생애가 주님께 바치는 영원한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부활 감사송 참조>

영성체송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우리를 속량하셨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성체로 저희를 기르시니, 저희가 간절히 바치는 기도를 들으시고, 성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파스카를 기념하여 거행하도록 명하신 이 성사로, 언제나 주님의 사랑 안에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한 젊은이가 성지 순례 도중 유명한 수도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젊은이 역시 평소 그분의 작품을 읽은 터라 내심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거실에 있는 것이라고는 책상 하나에 나무 걸상 서너 개, 책 몇 권이 전부였습니다.
젊은이는 깜짝 놀라 묻습니다. “수사님, 짐들은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수도자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나도 같은 질문을 하겠소. 당신의 짐들은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짐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순례 중이거든요.”
수도자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답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순례 중입니다. 누구나 하느님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매달릴수록 ‘천상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세상 것이 전부라고 여기면 그때부터는 ‘전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어떤 영적인 말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세상에 갇히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당신 자신을 ‘내어놓으신다’는 말씀인데도 못 알아듣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이 말만 되풀이합니다. ‘세상 시각’으로만 바라보려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식으로는 누구라도 성체성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